鄕愁(향수) - 정지용
넓은 벌 동쪽 끝으로
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,
얼룩백이 황소가
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,
-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
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
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,
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
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,
-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
흙에서 자란 내 마음
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
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
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,
-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
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
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
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
사철 발 벗은 아내가
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,
-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
하늘에는 성근 별
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,
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,
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,
-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
***
정지용은 1903년 충북 옥천에서 출생하여
휘문고보 및 일본 同志社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.
첫시집 [정지용시집](1935) 이후 [白鹿潭](1941) [지용시선](1946) 등과
[文學讀本](1948) [散文](1949) 등을 간행하였다.
김화산·박팔양·박제경 등과 동인지 [요람]간행,
박용철·김영랑 등과 [시문학]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,
조선문학가 동맹에 가담하였다.
1950년 전쟁 중 서대문 형무소에서 평양 감옥으로 이감되어 폭사당한 후
[정지용전집](1988)이 간행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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